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산 왕조 (문단 편집) === 기병(Savaran) === [[파일:attachment/sasaniancataphract.jpg]] 이란 군대의 주력이 중장기병이었음은 상술한 바와 같다. 사산 왕조의 중장기병들은 시대에 따른 갑옷, 투구, 무기, 마구나 기타 장비들의 변화를 제외하면 대체로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시대의 중장기병 형태를 그대로 계승했다. 근거리에서는 양손으로 잡는 장창을 사용해 돌격하고, 원거리에서는 활을 이용한 견제를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칼과 도끼, 메이스, 단검, 투창, 다트 등 다양한 보조 무기를 사용했다. 마갑을 갖춘 [[카타프락토이]]들이 가장 유명하고 중요하지만 그 수는 적었고, 아마 마갑 없이 기수만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Kaveh Farrokh 박사는 그의 책 《Sassanian Elite Cavalry》에서 시대에 따른 기병 무장 양식의 차이에 주목하여 사산 왕조 시대 중장기병들은 크게 3단계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우선 왕조 초기에는 로마와 주로 대립하면서 비싸고 불편한 파르티아식 판갑옷 대신 사슬갑옷을 도입했고, 마갑도 없거나 천으로 된 것들이 주류였다. 이것이 점차 중장화되어, 4세기경에 이르면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의 묘사대로 "눈구멍과 콧구멍을 제외한 전신을 철갑으로 가린" 식의 초중장기병이 나타났다. 그러나 4~5세기 이후 다수의 경장 궁기병을 운용하는 [[에프탈]], [[튀르크]] 등의 유목민들이 남하해 오자 소수의 둔중한 중장기병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결과 무장을 좀 더 가볍게 하고, 대신 숫자를 늘린 중장기병 운용이 나타났다. 거기다 본디 방패 없이 긴 창으로 무장했으나 창의 길이를 줄이는 대신 방패를 추가로 드는 방식으로 갑옷을 줄여서 생긴 방호력의 공백을 매우고자 했으며 또 칼의 패용법이나 활의 종류, [[등자]]의 사용 등에서 스텝 유목민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웃인 로마 제국처럼 사산 왕조도 근위대가 존재했다. 아케메네스 조의 근위대였던 [[불사 부대]]의 인상이 강해 사산 제국의 근위대도 중세 페르시아어로 불멸의 기병대를 의미하는 '''사바라니 저위던'''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사바라니 저위던의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고, 기록상 나온 근위대의 이름은 '''푸쉬티그반'''(Pushtigban)과 그 예하 부대인 '''기안-아비스파르'''(Gyan-Avspar)였다. 이들은 전원 중장기병으로 구성되었는데 '사바란'(기병) 중에서도 1,000명의 최정예 병사들만을 차출해 구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기안-아비스파르는 그 1,000명의 푸쉬티그반 병사 중에서도 더욱 최정예만을 골라 구성되었는데, 이름의 뜻[* 중세 페르시아어로 '''삶을 바친자/희생자'''라는 뜻인데, 이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버서커|돌격의 최전방에서 적에게 죽든 아군에 밀려 죽든]] [[광전사|미친듯이 싸우던 자들]]'''인 것으로 보인다.]에 걸맞는 열성적인 전투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들의 전투력은 고르고 고른 정예병인 만큼 엄청났다고 하는데 야사에 따르면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동방 원정 당시 무방비상태였던 율리아누스를 죽인 게 푸쉬티그반 소속의 중장기병이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firuzabad_battle_scene.jpg]] || 파르티아군과 맞붙는 초창기 사산 왕조 군대를 묘사한 암벽 부조. 당시 귀족들의 기마 전투 양식을 잘 보여 준다. || [[파일:Taq-e_Bostan-Khosro_Parviz.jpg]] || 이란 서부 [[케르만샤]] 주의 타케 보스탄에 남아있는 사산 왕조 후기의 부조. 완전무장한 당시 중장기병의 형태를 알 수 있다. || 경무장 궁기병 역시 중요한 전력으로 활용되었으나[* 사산조 기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 정주 문명의 역사가 오래된 사산 제국은 더 이상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와 [[카르헤 전투]] 시절의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처럼 대규모의 경무장 궁기병을 자체적으로 동원하기 어려워졌다.[* 파르티아는 기병의 90%가 궁기병에 주요 전력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사산 왕조에서는 중장기병의 비중이 늘고 궁기병은 이들과 보병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따라서 이란 본토의 군대는 거의 소수 귀족 전사 계급의 중장기병에 집중되었고, 경기병 전력은 주로 동맹, 속국 동원, 용병의 형태로 보충되었다. 대표적인 경우로 [[샤푸르 2세]]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의 유목민 집단인 [[서융|히온인]](Xionites)의 왕 그룸바테스와 전쟁을 벌여 그를 복속시킨 뒤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 동원한 경우가 있다. 파르티아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낙타]] 기병을 동원한 경우가 있지만, 사산 제국의 경우 낙타가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와 반대로 사산 제국의 가장 큰 적이던 동로마는 낙타 기병대를 운용한 것이 확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